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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사회연대경제기본법 국회 통과에 부쳐
사회연대경제기본법, 공동체의 공동자산으로 중대한 기능할 것
13년을 기다렸다. 오늘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4년 19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 142명이 이름을 올리며 시작된 논의는 세 번의 임기만료 폐기를 거쳤고, 지난 4월 법제사법위원회를 넘고도 본회의 문턱에서 다시 넉 달을 멈춰 섰다. 그 긴 시간을 이 법은 '이름 없는 법'으로 견뎠고, 이 법이 담으려 한 사람들 역시 '이름 없는 경제'로 견뎠다.
먼저 축하와 감사를 전한다. 12년 동안 발의하고 또 발의한 국회의원들, 상임위와 법사위의 문턱마다 자료를 만들고 설득하고 여름의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었던 활동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법이 없는 동안에도 자기 자리를 지킨 전국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과 자활기업, 소셜벤처의 구성원들에게. 오늘의 법은 국회가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시장도 국가도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이익을 위해 뭉친 사람들은 응집력이 강하고, 의미를 위해 뭉친 사람들은 응집력이 약하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의미를 위해 뭉친 사람들의 연대는 결국에는 힘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시장은 이윤이 나지 않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인구 3천 명의 면 소재지에 마지막 상점이 문을 닫을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시장의 계산이 아니다. 국가는 촘촘하지 못하다. 제도의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들, 서류 요건에 딱 맞지 않는 사정들, 예산 항목에 없는 필요들이 늘 남는다. 그 두 개의 빈자리에서 지난 수십 년간 실제로 무언가를 해온 이들이 있었다. 돌봄이 끊긴 자리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서로를 돌보고, 폐교를 고쳐 마을 도서관을 만들고, 방치된 빈집을 마을호텔로 되살리는 사람들이다.
흉년에 곡식을 나눈 의창, 품을 맞바꾼 두레, 이웃의 상을 함께 치른 계. 시장이 생기기 전부터, 국가가 복지를 말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산업화가 그 관행을 밀어낸 뒤에도 이 경제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꿔 왔다. 협동조합으로, 자활공동체로, 오늘의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으로. 미래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노동을 다시 짜고 기후가 삶의 조건을 바꾸어도 이윤이 나지 않는 자리와 제도가 닿지 않는 사정은 남는다.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는 특정 시대의 정책적 선택지가 아니라,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경제다. 다만 법의 언어로 호명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법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있던 것들에 정당한 이름과 자리를 부여하는 일이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 모든 조항마다 연대에 대한 중대한 진전과 확인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법의 시행은 우리 공동체의 중대한 공동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다.
이름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로운넷은 지난 세월 이 영역을 취재하며 그 답을 매일 확인해 왔다. 이름이 없으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통계에 없으면 예산에 오르지 못한다. 예산에 없으면 정책이 되지 못한다. 정책이 없으면 다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그 닫힌 회로 안에서 사회연대경제는 늘 '설명해야 하는 존재'였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 복지도 아니고 순수한 영리도 아닌 무엇, 자기를 소개하는 데만 긴 문장이 필요한 경제였다.
행정의 창구도 제각각이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로,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로,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로,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로. 같은 마을에서 같은 문제를 풀면서도 서로 다른 서류를 쓰고 서로 다른 기준을 맞춰야 했다. 지난 정부의 예산 삭감 국면에서 현장이 그토록 무방비하게 흔들렸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근거가 되는 법이 없는 존재는 언제든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통과된 기본법은 그 이름을 법전에 새기는 일이고, 지워지지 않을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
이 법이 12년을 표류한 이유를 우리는 안다. '사회'라는 두 글자를 두고 벌어진 소모적인 이념 논쟁이었다. 그러나 현장에는 이념이 없었다.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 이끄는 경상북도가 올해 사회적기업 육성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고, 청도군에서는 사회적기업이 빈집을 되살려 지역소멸에 맞서고 있다. 영국의 캐머런 정부도, 독일의 메르켈 정부도 자유시장과 사회연대경제의 조화를 추구했다. 유엔은 2023년 총회 결의로 사회연대경제를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의 핵심 수단으로 명시했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정 조직 형태에 우선구매와 재정·금융 지원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 물음은 앞으로 시행령과 제도 설계 과정에서 성실히 답해야 할 과제다. 사회연대경제가 특혜의 울타리가 아니라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실효적 수단임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법을 얻은 쪽의 책임이다.
이로운넷의 자리
이로운넷은 사회연대경제를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로서 이 여정의 곁을 지켜왔다. 상임위를 통과했다고 쓰고,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고 쓰고, 다시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고 썼다. 좌절을 기록하는 일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편집국의 기자들이 반복되는 무산 소식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오늘 이 소식을 쓰게 되어, 우리 임직원 모두가 남다른 마음이다.
그러나 축하의 자리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기본법은 말 그대로 기본 골격을 정한 법이다. 실질적인 변화는 시행령과 기본계획, 예산 편성에서 결정된다. 사회연대경제발전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사회연대금융의 재원이 어디서 오는지, 부처별로 흩어진 인증 제도가 실제로 정비되는지, 오늘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일은 언론의 몫이다. 우호적인 매체라고 해서 비판을 접어두는 것은 이 영역을 돕는 길이 아니다. 잘된 것은 알리고 미흡한 것은 지적하는 것, 그것이 이로운넷이 이 법의 다음 13년을 함께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법은 사람을 대신하지 못한다. 오늘 통과된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찾을 자격이다. 어떤 협동조합은 여전히 문을 닫을 것이고 어떤 사회적기업은 자립에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길을 지지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남는 방식 말고는 이 시대의 문제를 풀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경제가 남긴 것은 승자의 불안과 패자의 모멸,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동의 문제들이었다. 연대의 경제는 그 반대편에서 조용히, 그러나 실제로 무언가를 해왔다.
13년 만에 이름을 얻었다. 이제 그 이름값을 할 시간이다. 축하드린다. 그리고 함께 가겠다.
이로운넷=윤병훈 kisin0032@ero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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